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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1
#1 임시정부의 안 살림을 챙겼던 ‘수당 정정화’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인 이들이 대내외적으로 나라를 위해 행동할 때, 뒤에서 임시정부의 안 살림을
묵묵하게 챙긴 임시정부의 살림꾼 ‘수당 정정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실래요?
#2 예쁘고 영리한 막내 딸, 11살 어린 신부가 되다
1900년 수원 유수를 지낸 정주영의 막내딸로 태어난 정정화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예쁘고 영리한’ 딸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천자문을 떼고
소학을 읽을 정도로 총명했죠. 하지만 황혼을 앞둔 할아버지가 당신이 눈 감기 전 손녀의 결혼을 봐야겠다며 고집을 부립니다. 이에 정정화는 열한 살의
어린 신부가 되어 동농 김가진의 자제 성엄 김의한과 결혼하게 됩니다.
#3 스무살에 뛰어든 독립운동, 시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상해로 망명하다
운명이었을까요? 동농 김가진은 독립운동의 큰 어른으로 불릴 정도로 나라의 독립에 힘쓴 어른이었습니다. 그의 아들 김의한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들은 일찌감치 상해로 망명해 독립운동에 힘썼는데요. 대한민국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있던 정정화는 이 소식을 듣고 스무살이 되던 해 이들을 찾아
상해로 떠납니다.
#4 압록강에 6번 목숨을 걸다
어렵게 당도한 상해 임시정부. 하지만 임시정부는 생활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특히 문제는 자금 부족이었습니다. 이에 정정화는 직접 고국에 돌아가
돈을 마련해오겠다는 뜻을 밝힙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말렸지만, 딱 부러지게 말을 하지는 못합니다. 사실 그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인데요.
결국 그녀는 독립자금을 위해 상해와 대한민국을 넘나드는 일을 하게 됩니다. 1920년을 시작으로 1930년까지 총 6번 동안 압록강을 건너 고국에서
독립자금을 마련해오죠.
#5 “후동 어머니 나 밥 좀 해줄라우?”
정정화는 충칭 임시정부시절부터는 동포 여성 및 아이들의 교육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고 하는데요. 특히 1940년에 만들어진 한국여성동맹과 1943년
결성된 한국애국부인회(1919년 창립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재건 조직)의 주축이 되어 임정요인들의 자녀를 가르치고 국내외의 여성들의 독립의식
고취, 군자금 모금에 주력했다고 합니다.
#7 쓸쓸한 난민이 되어 돌아온 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