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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을 전후로 하여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3.1운동의 발화점이 된 2.8독립선언서를 조선에 갖고 들어 온
대한애국부인회의 김마리아 선생은 여성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으면,
최초 여성항일의병장 윤희순과 최초 여성 무장투쟁독립운동가 남자현,
아우내 만세운동의 유관순, 민중계몽운동 상록수의 주인공 최용신 등
다양한 분야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하였다.
임시정부는 윤봉길의 홍구공원 의거 이후
심해진 일제의 탄압을 피해 상해를 떠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야 했다.
이때 임시정부 여성들은 요인들의 식사나 빨래, 독립운동가 가족들의 안위를
보살피는 살림 위주의 일을 담당하였으나 후에 임정의 외교 및 군자금 모금 등의
일을 담당하였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정정화 선생과 같은 임정의 여성들은 한국혁명여성동맹,
애국부인회 등 독립운동단체의 실질적인 운영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사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일제의 착취 속에서 소외 받던 한국 여성들에게 해방은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날 결정적 계기로 인식됐다.
때문에 여성운동가들은 해방 이후 여성단체를 결성하여
공창제 폐지, 여성참정권과 교육 등 여성정책의 처리를 요구했다.
그러나 관련 정책이 빛을 보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
여성인권 및 여성해방운동이 전개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 중심역할을 한 것은
가난한 농가의 딸들과 여성노동자였다.
가부장적 가족구조의 희생과 헌신의 중심에 여성노동자, 기지촌 여성,그리고
외화획득과 생계비 마련을 위해 생이별을 감수했던 해외취업자와 그 아내들이
이 시대 여성의 자화상이었다.
이 시대 한국의 고도 경제성장에는 차별적 성별분업을 감내한
여성노동자의 고통과 희생이 존재했다.
앞서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여성노동자층의 형성과
군부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 운동은 1980년대 전체 사회변혁 맥락에서
성차별을 해결하려는 여성운동의 성장기반이 되었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 뿐 아니라 가정폭력 등 오랫동안 은폐되어 온 사적 영역의
여성폭력과 억압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공적 관심을 받게 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