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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 온 가족이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선생 가족 이야기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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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온 집안 식구가 독립운동에 나서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용기 냈던 일제강점기.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온 가족 구성원의 독립운동을 알고 계시나요?


#2 10대를 거친 사대부家에서 독립운동家로, ‘우당 이회영’선생 가문




을사오적 암살, 신민회, 헤이그 특사 파견 등 국내외 항일운동을 활발히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우당 이회영’선생. 이회영 선생의 집안은 역대 선조들이 

높은 벼슬을 한 사대부 명문가였는데요. 실제 이조 판서를 지낸 그의 아버지 이유승을 비롯해 위로 10대에 걸친 선조들이 정승, 판서, 참판을 지낸 명문집안이었죠. 


#3 명문가 집안, 나라 위해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1910년 경술국치(우리나라의 국권을 상실한 치욕의 날)가 일어나자, 이회영 선생 가족들은 지도자 층이 보여줘야 할 움직임을 행동으로 실천합니다. 

이회영 선생과 동생 이시영·이호영, 형 이건영·이석영·이철영 등 여섯 형제는 독립을 위해 뜻을 모읍니다. 이후 전 재산을 팔아 그들의 가족 50여명이 

함께 만주로 넘어가 독립투쟁을 이끌어 나가게 되죠.


#4 현재 가치 600억 원을 독립투쟁에…




이회영 선생 가문은 대대로 명망 높은 명문 집안에 재산도 방대하다 보니 일제는 이들을 회유하려 듭니다. 귀족 지위를 수여하고, 수십억 원의 돈을

제공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형제들은 이를 거부합니다. 오히려 온 재산을 팔아 얻은, 현재 가치로 600억 원에 이르는 돈을 모두 독립운동을 

위해 썼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형제들이죠.


#5 이家네 형제들, 독립운동 양성학교 설립




만주로 넘어간 형제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실로 어마어마한 일들을 했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는데요. 특히 이들은 교육에 많은 노력을 

합니다. 눈에 띄는 업적은 바로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인데요. 향후 위대한 업적을 세우는 김좌진·지청천(이청천)·이범석 장군과 3천여 명의 정예군들은 모두 

이들의 노력 덕분에 나온 것이죠. 


#6 그러나 쓸쓸히 맞이한 죽음




이처럼 나라를 위해 힘쓴 독립운동가 집안이지만 그들의 마무리는 안타깝게도 매우 쓸쓸했습니다. 첫째 이건영은 머나먼 중국 땅에서 병사하고, 가장 많은

돈을 보탠 둘째 이석영 역시 중국 빈민가를 떠돌다 죽음을 맞이합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일흔 가까운 나이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칩니다만, 

아버지가 맞이한 쓸쓸한 죽음에 충격을 받은 석영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에게 밀고를 당해 순국하고요.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온 가문의 가족수가 20여명 

남짓에 불과했다고 하니 그들이 택한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길이었는지 상상이 가시나요?


#7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뛰어넘은 이들, 잊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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