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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랑기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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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랑객 같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현재의 대한민국 기틀을 마련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어렵고도 힘든 길을 택하고 일제를 피해 중국 각처를 떠돌아다녀야 했던 것을 아세요?


#2 ‘상하이’에서 역사는 시작! 




프랑스 조계지로 일제의 탄압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곳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됩니다. 당시 상하이는 프랑스 조계지(외국인 거주지)였기에 외부와 연락이 쉽고 비교적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자유로웠다고 하죠. 그 결과 이곳에서부터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정부의 각 조직이 구성되는 등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죠. 

#3 윤봉길 의사 의거 이후, 임시정부는 항저우行


상하이 임시정부 시절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는 바로 1932년 일어난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인데요. 하지만 이 때문에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집니다. 결국 임시정부는 상하이를 떠나야 했고, 1932년 상하이보다 조금 남쪽에 위치한 항저우로 거처를 옮기죠. 


#4 이동 또 이동 … 계속되는 임시정부의 유랑생활




하지만 항저우에서도 오래 머물지는 못했습니다. 임시정부는 그 존재 자체를 없애려는 일제를 피해 중국의 전장(1935년), 창사(1937년), 광저우(1938년), 류저우(1938년), 치장(1939년) 등으로 계속 거처를 옮겨가죠. 실제 이 당시 임시정부를 이끌던 김구는 언제든지 몸을 피할 수 있게 운하 위의 배를 거처로 삼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어렵게 임시정부를 지켜왔는지 실감이 나시나요?

#5 드디어 임시정부, 충칭에 정착하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이 바로 충칭입니다. 1940년 충칭으로 거처를 옮긴 임시정부는 광복 전까지 이곳에 정착해 독립운동을 이어갑니다. 다시 힘을 얻게 된 임시정부는 한국독립당 통합, 한국광복군 창설 등 더욱 조직화 된 독립운동을 이어가죠.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하고 국내진입작전을 추진 한 것도 바로 이 시기고요. 

#6 1945년 8월 15일 광복! 그러나, 고국行 불발



하지만 광복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이름으로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당시 미군정에게 합법적인 정부로 승인을 받지 못해 관련 위원들이 개인자격으로 귀국했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고국에서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이들의 노력은 계속되었죠. 그 결과 1948년 8월 15일 이를 계승한 정식 정부가 수립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7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 



2019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현재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거쳐간 대표적인 곳인 상하이, 항저우, 충칭 등에는 당시 청사로 쓰이던 건물을 유적지 기념관으로 운영하고 있답니다. 그들의 노력과 숭고함을 기억하며 우리도 임시정부의 유랑길을 함께 가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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