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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뉴스 ] 제주 해녀들이 외친 항일의 노래 <해녀의 노래>

2018-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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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주 해녀들, 물이 아닌 뭍에 나선 이유




1932년 제주에서는 3개월 동안 총 238회, 약 1만 7천여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일운동이 벌어집니다. 이 운동의 리더는 제주 해녀들이었습니다.


#2 일제의 폭압에 가혹한 생활을 하던 제주 해녀와 어민들




당시 제주 해녀와 어민들은 일제의 폭압으로 매우 어려운 생활을 이어갔는데요. 특히 해녀들은 일본인과 결탁해 만들어진 해녀어업조합에 강제로 가입돼 

혹독한 노동과 터무니없는 가격에 해산물 착취를 당하게 됩니다.


#3 ‘우뭇가사리’가 시세 반값?




대표적 사건이 바로 1930년도 성산포에서 일어난 ‘우뭇가사리 부정판매사건’입니다. 일본인 관리들이 당시 우뭇가사리의 시세를 무시, 반값에 매입해버린 

사건인데요. 이에 해녀들은 물론 어민들 의 격분도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은 지속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다 발생한 1931년 하도리 사건은 제주 해녀 항일운동의 도화선이 됩니다. 이 역시 일본 물산회사가

턱 없이 낮은 가격에 매입을 강요한 사건인데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해녀들은 최고 지도자와 대표위원 등을 선출에 조직적인 저항을 시작합니다.


#4 ‘해녀의 노래’와 함께 퍼져나간 항일운동




1932년 1월 김옥련, 부춘화, 부덕량 등이 주도한 세화리 시위를 시작으로 하도리, 종달리, 연평리, 오조리, 시흥리 등 제주 각지에서 해녀들의 항일 운동이 

전개됩니다. 이들은 당시 해녀들의 고단함을 빗대어 만든 ‘해녀의 노래’를 부르며 만세운동을 이어갔는데요. 이에 놀란 일제는 무력 탄압을 실시하지만 

오히려 거세지는 반대에 그들의 항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과연… 


#5 국내 최대의 여성 항일투쟁




하지만 이는 거짓에 불과했습니다. 일제는 오히려 해녀들의 배후로 당시 야학교사를 지목하고 이들을 모조리 잡아갑니다. 주도자들 역시 일제에 잡혀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요. 이 소식을 들은 해녀들은 더욱 강력하게 항쟁합니다. 이는 오히려 제주 각지의 해녀들을 결집시키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그 결과 해녀들의 항일운동은 연 인원 1만 7천여명이 참여한 국내 최대의 여성 주도 항일투쟁으로 기록됩니다. 


#6 광복절에 불린 다섯 해녀의 이름 




지난 8월15일, 제73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향, 부춘화 등 다섯 명의 해녀 이름이 불려집니다. 이들은 제주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한 해녀들인데요. 대통령은 이들을 언급하면서 제주 해녀 항일운동을 재조명하고 정당한 평가와 예우를 차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혹독한 노동환경과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용기 있게 저항한 자랑스러운 제주 해녀들.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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