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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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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학술포럼-한완상 위원장 개회사(19.11.07)

2019-11-07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되는 대한민국 미래 100년 전망 국제학술포럼은 3‧1운동에 대한 성찰과 공감을 토대로 하여, 대한민국의 미래 100년 국가비전을 논의하는 값진 소통의 마당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교훈을 바탕삼아 미래의 비전을 그려보기 위해서는 3‧1운동이 비폭력‧평화운동이었고, 제국주의 식민정책에 대한 약소민족의 자주 독립운동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은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던 당시 세계에서는 참으로 감동적이며 울림 있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먼저, 철저하게 비폭력을 고수하며 평화를 지향했던 3‧1운동의 울림을 주목해야 됩니다. 1919년 3월 1일, 태극기 하나와 독립선언서 한 장을 들고 일제의 무단통치에 맞서 독립만세를 외친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헌병‧경찰의 폭력적 진압에 대하여 철저하게 비폭력의 힘으로 당당하게 대응했습니다. 선조들은 이 같은 철저한 비폭력 적극저항으로 당시 세계에 감동의 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인구의 10%이상의 민중들이 이 감동적 울림을 서로 나누면서 온 민족과 온 민중당당하게 저항했습니다. 이것은 살신성인의 고매한 정신의 발현이었습니다. 3‧1운동의 공공적이고 변혁적이며 감동적인 비폭력 저항이야말로 바로 우리가 기리고 살려야 할 우리민족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러한 3‧1운동의 비폭력‧평화 정신의 감동적 특성은 당시의 국제상황을 함께 고려할 때 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참혹했던 1차 세계대전이 3‧1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까지 계속되었고, 2년 전인 1917년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 유혈계급 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폭력과 살육이 만연했던 당시에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의 가치를 온몸과 마음으로 실천했다는 것은, 우리민족이 이미 그 때 선진민주국의 수준에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외쳤던 ‘독립’이 단지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폭력적 패권주의로부터 인류의 해방, 즉 세계의 평화와 공영(共榮)을 지향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같은 울림이 마침내 중국의 5‧4운동을 비롯해 인도와 베트남, 필리핀 등 피압박 약소국의 독립운동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 시성(詩聖) 타고르가 ‘동방의 등불’이라고 우리민족을 평가했고, 네루가 자신의 딸에게 옥중에서 쓴 서신에서 “코리아에서 일어난 일을 네가 안다면, 너도 큰 감동을 받을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둘째, 이러한 3‧1운동의 민주평화 정신의 영향을 받아 상해 임시정부는 국가정체를 ‘민주공화제’로 선언했습니다.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의 혁명적 전환을 장엄하게 선포한 것입니다. 이는 세계 사상 헌법에 민주공화국을 명시한 첫 사례였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보다 더 빨랐습니다. 특히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강탈당한 아픔을 망명지에서 온 몸으로 겪었던 애국지사들이 타는 목마름으로 갈망했던 민주국가 건설이었습니다.

  이처럼 3‧1운동은 36년간 일제강점시기에는 독립을 향한 민족의 외침인 동시에 74년간의 한반도 분단시대에는 민주화 운동과 평화운동의 외침이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그리고 2016년에서 2017년까지 벌어진 촛불시민혁명으로 3‧1운동의 ‘민주주의와 평화’정신을 끈질기게 실천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세계의 최첨단 선진민주국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현대 민주주의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스웨덴의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가 2019년 펴낸 연구보고서 <세계적 도전에 직면한 민주주의>에 따르면, 한국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를 구가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1)

  셋째,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세계평화에 대한 열망은 당시 대국들의 위선적 행태에 견줘볼 때 더욱 빛이 납니다. 지난 한 세기동안 구미강대국들은 자기 국민에게는 민주정치를 약속하고 실천하면서도 대외정책은 약소국 민중에게는 잔인하고 탐욕적인 식민정책을 무자비하게 시행했던 부끄러운 이중성을 보였습니다.2)

  이 때 동양평화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무력으로 이웃 나라를 강점했던 나라가 바로 당시 일본이었고, 영국과 미국은 같은 해양대국으일본의 야만적 식민지 강점 정책을 스스럼없이 지원하거나 묵인했습니다. 이런 냉혹한 현실에 대해 3‧1운동 주체들은 행동으로, 선언으로 당당하게 평화적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했습니다. 당시 임시정부 헌장 제7조는 인류문화와 평화에 공헌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한반도 평화가 한 약소국의 독립과 평화만이 아니라 세계평화와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도 광복과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74년간의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독립 운동가들이 꿈꾸었던 평화로운 통일조국은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이런 분단의 트라우마 상황에서 최근 한국사회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불평등의 심화, 4차 산업 혁명의 도전, 그리고 대의민주제에 대한 비판 등으로 정치 사회적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도전 속에서도 우리 국민들은 창조적 순발력으로 꾸준히 노력하여 세계 최빈국 중 하나에서 정치선진국으로, 경제중진국으로 굴기하였고, 문화적으로도 젊은이들의 창조적 끼가 넘치는 새로운 문화흐름을 주도하며 세계로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앞으로도 3‧1운동의 그 감동적 울림의 힘으로 미래 사회가 직면하게 될 여러 도전적 난제들을 잘 해결해 나가면서 마침내 남북 간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고, 선진적 포용국가를 향해 힘 있게 달려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이번 국제학술포럼이 지난 날 우리들의 공공적, 변혁적 노력을 함께 평가하면서 서로 배우는 값진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열심히 배우면서 평화와 포용의 가치를 더욱 널리 세상에 알립시다. 보다 밝고 맑은 미래는 과거의 잘못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현재의 비리와 모순을 청산하려 할 때 마침내 우리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평화의 단비가 한반도에 촉촉이 내리고 정의와 자유의 큰 강물이 한반도 남북과 동서로 힘차게 흘러내리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 특히 인구 5천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이른바 ‘30-50클럽’ 선진 7개국 중에서도 한국은 가장 민주적인 국가로 평가됐습니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이 그 뒤를 이었고, 프랑스, 미국, 일본은 상위 20%에 속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습니다.


2) 일제 역시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서방 패권주의의 침략을 비판하면서 동양 약소국의 평화를 소중하게 여기는 듯한 위선적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청일전쟁이 끝나자마자 대만을 대번에 식민지로 삼켰습니다. 러일전쟁 와중에는 미국과 가쓰라-태프트 밀약(Katsura-Taft memorandum)을 맺어 한반도를 강점하려는 전략을 부끄럼 없이 드러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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